언젠가 어린 시절 아버지가 전축이란 걸 사오셨다. 대략 30년쯤 전 얘기. 좀 더 정확하게는 28년쯤 전?
당시 초등학생이던 나에게 전축은 무척 생소했고 턴테이블은 정체불명의 플라스틱이었다.
그나마 친숙했던 카세트 데크. 그때까지만 해도 CD 플레이어는 없었으며 더블 데크 사양이어서 공 테이프를 한 쪽에 꽂아 다른 테이프의 소리를 복사할 수 있었다. 이것이 좀 더 시간이 지난 후의 사용법. 처음에는 개학 직전 밀린 방학숙제를 하기 위한 라디오 청취 용도로만 사용했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HiVi라는 잡지사에서 일하면서 제프롤랜드, 메리디언, 부메스터, 윌슨오디오, 소너스파베르, 호블랜드, 하베스, 다인오디오, KEF, 럭스먼, ATC, 프로악, 매킨토시, B&W 같은 브랜드들을 알게 됐다. 그때 들은 음악의 감동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내 어린 시절 전축으로는 미처 듣지 못했던 소리들.
그래도 오래 전 기억 중 선명한 것 하나는 방학숙제 때문에 열심히 들었던 라디오에서 좋아하는 노래가 나올 때면 공책에 열심히 가수 이름과 곡명을 적어놓고 동네 레코드숍에 방문해 테이프를 찾았던 일들. 혹은 좋아하는 노래의 가사를 열심히 받아적고, 그러다 미처 놓친 부분이 있으면 다시금 그 노래가 나올 때까지 며칠이고 열심히 들으며 기어이 완성했던 가사집. 지금은 인터넷이 발달해 검색만 해보면 때와 장소 구분 없이 확인하고 들을 수 있지만 대신 그때만큼 열정적으로 기억했던 '내 18번 곡집'은 더 이상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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