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행사에는 소니의 전설적인 사운드 엔지니어 코지 나게노(Koji Nageno)가 방한해 이날 발표한 주요 제품에 대해 소개하기도 했다. 코지 나게노는 소니 2대 이형(귀 모양) 장인이며 소니의 전설적인 헤드폰 ‘MDR-R10’을 개발한 엔지니어이기도 하다. 스튜디오 모니터링 헤드폰으로 유명했던 MDR-CD900, 엄청난 판매량을 자랑한 이어폰 MDR-E888, 이어 스피커 타입 헤드폰 MDR-F1, 밸런스드 아머쳐 이어폰인 XBA 시리즈를 개발했고, 국내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MDR-1R 시리즈를 총괄하기도 한 소니 수석 사운드 엔지니어다.
MDR-Z7은 차근차근 성능을 개선해 온 플래그십 헤드폰
우선 그는 2003년 단종된 소니의 전설적인 플래그십 헤드폰 MDR-R10의 뒤를 잇는 헤드폰이 출시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 코지 나게노 소니 수석 사운드 엔지니어
“R10은 Z7과 완전히 다른 제품입니다. R10을 만들 때는 기기의 느낌보다 악기에 가까운 느낌으로 만들었죠. 그와 달리 Z7은 2012년에 출시된 MDR-1R을 베이스로 해서 성능을 개선시킨 모델입니다. 즉 최신 음악 트렌드에 맞춰 다이내믹레인지와 재생 주파수 대역을 넓히기 위해 노력한 제품입니다. 물론 특정 파트에 있어서는 R10과 Z7 두 제품이 비슷한 면모를 보이기도 합니다. 디자인적으로는 R10이 기존 헤드폰들보다 두껍고 둥그스름한 형태를 지녔는데 Z7도 그처럼 내부 공간을 키워 넓은 사운드 스테이지를 재생할 수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Z7은 R10의 디자인에 대한 오마주이며 소리는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제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에 의하면 Z7은 MDR-R10의 디자인을 계승하면서 사운드는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제품이다. 비록 가격은 소니 퀄리아 010과 MDR-R10보다 현격히 저렴하지만 그것은 마케팅 부서에서 정할 부분이라고 선을 그었다. 엔지니어 입장에서 MDR-Z7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사운드 퀄리티를 차례차례 높여 온 최신작이므로 단순히 가격만 가지고 플래그십이 아니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가격은 엔지니어가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MDR-Z7은 엔지니어 관점에서 볼 때 대단히 훌륭한 제품이라고 자부합니다. 타사의 고가 제품들과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죠.”
왜곡없는 음재생을 위해 얇고, 단단한 다이어프램 개발
코지 엔지니어는 MDR-Z7이 고급스러운 메탈과 가죽을 사용해 만듦새가 좋고, 무엇보다 세계 최대 구경인 70mm 대구경 드라이버 유닛을 채택한 점을 강조했다.
▲ 70mm 대구경 드라이버로 고음질을 구현한 방법을 설명하는 코지
나게노
“사운드가 귀로 전달될 때 착용자의 귀 형태나 모양에 따라 반사음이 발생하는데 그 불필요한 반사음을 어떻게 처리하는지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다이어프램이 크면 반사나 왜곡을 줄일 수 있지요. 진동판이 앞뒤로 무수히 많이 움직이며 소리를 만들어내는데 이 때 큰 진동판은 작은 진동판보다 움직이는 범위가 좁습니다. 그래서 소리의 왜곡도 줄어들게 되죠. 물론 드라이버 자체를 크게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스피커 시스템을 예로 들면 트위터는 매우 작고 반대로 우퍼는 굉장히 크지요. 우퍼는 그 크기를 부지런히 움직임으로써 풍부한 저음을 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이어프램이 무거워서 고음을 낼 수 없습니다.”
코지 엔지니어는 선명한 고음을 재생하기 위해 다이어프램을 얇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만약 진동판이 지나치게 부드러우면 마그넷 코일과 닿는 중앙 부분만 움직이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제대로 된 소리가 안 나옵니다. 움직일 때 드라이버 전체가 한 번에 움직이는 게 중요합니다.”
▲ 소니의 MDR-Z7 헤드폰과 NWZ-ZX1 HRA 플레이어,
PHA-3 헤드폰 앰프
그는 Z7에 들어가는 다이어프램을 꺼내 들고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Z7의 진동판에는 몇 단계에 걸쳐 꺾인 부분이 존재하는데 그 부분에 단단함과 가벼움을 동시에 갖춘 재질로 종이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진동판은 액정폴리머(LCP) 진동판을 사용해 빠르고 고른 진동이 가능해졌다고 한다.
“중앙부는 단단하게, 주변부는 소프트하게 만들어야 했습니다. 가장 많이 움직이는 부분이 중앙부죠. 그래서 진동판 안쪽에 더 많은 주름이 있습니다. 주름진 부분에서 탄력을 얻을 수 있는 만큼, 주름의 개수가 음질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또 드라이버와 귀 사이 공간의 크기를 최적화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Z7은 밀폐형 헤드폰이지만 안팎으로 홈이 있어 30%는 개방된 세미 오픈 타입입니다.”
엔지니어 뿐 아니라 모든 이가 만족할 수 있는 소리로 튜닝
코지 엔지니어는 기술적인 부분이 해결된 다음에는 음 튜닝에 공을 쏟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기본적으로 다양한 측정장비와 주파수 측정장비를 사용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엔지니어가 듣고 평가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듣고 기쁘지 않으면 사용자도 즐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 스스로 좋아할 만한 사운드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기계적인 측정과 엔지니어의 경험이 함께 녹아 들어 그 제품의 음질이 되는 셈이죠. 예를 들면 저는 AKB48이라는 아이돌 그룹 음악도 좋아하는데 그 음악을 들으며 XB 헤드폰 시리즈를 만들었죠. 당연히 제가 들은 AKB48의 음악이 하이 레졸루션이 아니었고, 고음부에 노이즈가 많았지만 듣다 보면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저는 어떤 사람이 음악을 듣는지에 대해 최대한 고민하는 편입니다. 개개인이 각자 취향에 맞게 즐길 수 있는 제품을 만들려고 하지요.”
음질에 대해 얘기하면서 그는 한 가지 재미난 점을 설명했다.
“유럽 같은 곳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교회나 성당에서 음악을 듣기 때문에 공간이 넓고 하울링 된 음과 하모니적인 부분을 중요시하는 반면 미국은 유럽의 성향과 아프리카 음악이 접목돼 힙합이나 댄스 음악 같이 비트가 강한 음악을 많이 듣습니다. 아시아는 멜로디를 중시하고요. 그래서 저희가 헤드폰 만들 때 어느 정도 기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소니뮤직과 협업하게 됐습니다. 소니뮤직은 세계에서 2번째로 큰 음반사입니다. 그 곳은 마이클 잭슨 등 세계적인 뮤지션들과 많은 작업을 해왔고, 사운드 트렌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회사지요. 저희가 MDR-1R을 개발할 때에도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소리의 중심을 어디에 둘 것인가 소니뮤직과 같이 연구했습니다. 즉, 저희가 개발하는 소리는 ‘현 시대에서 여러 사람이 함께 음악을 들었을 때 충분히 만족할 만한 소리’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말미에 집에서 음악을 들을 때 헤드폰이나 이어폰으로 듣는지, 혹은 오디오 시스템으로 듣는지 살짝 물어봤다.
“사실 집에서는 헤드폰으로 음악 듣지 않습니다. 스테레오 스피커로 음악을 들어요. 헤드폰으로 음악을 듣게 되면 음악을 즐길 수 없거든요.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으면 집에서도 일하는 것 같아서 헤드폰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해는 하지 말아주세요. 헤드폰을 싫어하는 것은 아닙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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