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19일 목요일

박일환 아이리버 대표 "아스텔앤컨 성공비결은 혁신추구"

MP3 플레이어 전문기업 아이리버가 오랜 부진의 늪에서 벗어났다. 그간 아이리버는 네비게이션, 전자사전, 사운드바 등 여러 종류의 제품을 출시하며 재기를 노렸지만 전성기 때만큼 좋은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결국 아이리버는 고심 끝에 “가장 잘 하는 것에 집중하자”고 결론을 내렸고, 고음질 포터블 플레이어 ‘아스텔앤컨(Astell&Kern)’으로 흑자전환하면서 해외에서 주목받는 오디오 제조사가 됐다. 

아스텔앤컨의 아스텔(Astell)은 그리스어로 별(Star)을 뜻하고 컨(Kern)은 독일어로 중심(Center, Middle)을 뜻한다. 별처럼 아름답게 빛을 발하는 오디오 기기 중 으뜸이고 싶다는 표현일까? 

박일환  아이리버 대표
▲ 박일환 아이리버 대표

“(방에 놓인 스피커를 가리키며) 저 스피커는 메탈사운드디자인(MSD)과 협업해 완성한 스피커입니다. 이름은 카스트로인데 그 뜻이 쌍둥이별이죠. 아스텔앤컨이 ‘별들의 중심’을 뜻하는데 그래서 별 이름으로 했습니다.”

박일환 아이리버 대표는 집무실에 놓인 아이리버 제품들을 보여줬다. 거기에는 신제품 거치형 네트워크 플레이어 AK500N과 조만간 출시될 인티그레이티드 앰프 AK500A, 파워서플라이인 AK500P도 함께 있었다. 카스트로 스피커 외에도 진공관 앰프와 모노럴 파워 앰프도 놓여 있었다. 모두 아이리버에서 설계하고 샘플로 만들어 본 제품이라고 한다. 

아스텔앤컨 성공의 비결 1-‘무모함’

“사실 저는 턴테이블을 본격적으로 들어보지 않았습니다. CD세대죠. 턴테이블은 음악감상실에서 많이 들었는데 화이트 노이즈도 많고 특히 LP 관리가 어렵잖아요. 제대로 음을 즐기려면 투자도 많이 해야 하고 공간도 필요하고요. 당시에는 그럴 여유가 없었습니다.”

아이리버를 대중들에게 각인시킨 MP3 플레이어들은 디지털 플레이어다. 하지만 그는 아스텔앤컨은 ‘아날로그’ 기기라고 강조했다. 

“오디오에 대해 경험 없는 게 저희의 약점이자 강점입니다. 만약 지금 오디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지식을 그때 가지고 있었더라면 아스텔앤컨을 못만들었을 겁니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아이리버의 경험과 지식은 기본적으로 디지털 포터블 뮤직플레이어에 있었습니다. 기본적으로 디지털 기술입니다. 그런데 아스텔앤컨을 해보니까 디지털 기술이 아니고 아날로그 기술이었습니다. 아날로그 회로기술이더라고요. 문제는 아이리버가 전혀 경험해보지 않은 영역이었고, 그 영역은 최소 수십 년에서 100년 이상된 회사에서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기술이라는 것을 지금도 계속 느끼고 있습니다. 그 때에는 그걸 몰랐으니까 무모하게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이죠.”

아스텔앤컨 성공의 비결 2-‘훌륭한 스승들과의 만남’


박일환 대표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2악장을 즐겨 듣는다. 아스텔앤컨으로 들으면 재현하기 어려운 피아노 소리를 사실적으로 들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 박일환 대표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2악장을 즐겨 듣는다. 아스텔앤컨으로 들으면 재현하기 어려운 피아노 소리를 사실적으로 들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박 대표는 무모함을 앞세워 만든 첫 번째 ‘별의 중심’ AK100을 개발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처음에는 막연하게 스펙이 좋아지면 소리가 좋아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MP3 플레이어는 다이내믹 레인지가 기껏 90dB 넘기 쉽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100dB가 넘어가면 좋아지지 않을까, T.H.D(전고조파 왜율)가 0.0008%쯤 되면 더 좋아지지 않을까 하고 목표를 정했습니다. 실제 목표 스펙보다 낮은 중간 단계 제품을 들어보니 소리가 꽤 좋았어요. 그래서 우리가 목표로 한 스펙에 맞추면 소리가 진짜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며 2~3개월 노력해 원하는 스펙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들어보니 소리가 MP3가 돼 있더군요. 지금 생각해 보면 소리를 들을 줄 아는 귀가 없었던 것이 실수였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아이리버 내부에서는 소리가 좋았던 미완성품과 스펙이 뛰어난 완성품을 두고 계속 들어봤다고 한다. 박 대표는 “다행히 사내에 소리를 들을 줄 아는 귀를 가진 사람이 여럿 있었다”면서 “스펙이 좋아지더라도 꼭 소리가 좋아지지만은 않는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경험하게 된 계기”라고 말했다. 

“물론 스펙이 좋다 보니 AK100의 투명도(Transparent)는 아주 좋았습니다. 모든 소리가 다 들렸죠. 다만 그 소리가 음악적인 하모니로 들리지 않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출시된 AK100은 해외에서 많은 논란이 일었다. 특히 일본에서 몇몇 엔지니어들이 아이리버의 새로운 시도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일본에 있는 몇몇 분들이 이 기계를 보고 저희한테 왔습니다. 그 중 파이널오디오디자인의 설립자인 카네모리 다카이 씨도 있었죠. 이 분이 홍콩에서 우연히 이 제품 듣고 한국의 조그만 회사, 본인이 잘 알지 못하는 회사, MP3 플레이어를 만들었다는 회사가 이런 시도를 한다는 것이 너무 재밌다며 이 방에 와서 함께 비즈니스를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디오 개발자로서의 40년간 경험한 지식과 노하우들을 아무 대가없이 나눠줬습니다.”

뜻이 통하면 길은 보인다고 했다. 오디오 엔지니어들은 당시 오디오 회사들이 아이리버 같이 새로운 도전을 하지 못하는 것에 불만을 갖고 아이리버에 조언과 함께 여러 제안을 해줬다. 아이리버는 그 제안들을 받아들이며 제품을 더욱 가다듬을 수 있었다. 

아스텔앤컨 성공의 비결 3-‘채색되지 않은 원음 추구’


2007년부터 세계 LP 판매량이 증가했다. 박 대표는 이것이 고음질을 원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 2007년부터 세계 LP 판매량이 증가했다. 박 대표는 이것이 고음질을 원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아스텔앤컨이 성공한 데에는 개성이 없는 소리가 한몫 했다고 밝혔다. 다른 회사의 제품들은 개성을 강조하지만 아스텔앤컨은 그 반대의 길을 걸었다는 것이다. 

“전통 있는 오디오 회사들은 기본적으로 그들만의 음색이 있습니다. 매킨토시가 추구하는 음색, 보스가 추구하는 음색, 뱅앤올룹슨이 추구하는 음색이 있지요. 그런데 아스텔앤컨은 음색이 없습니다.”

박 대표는 오디오 업체들이 오래 전 녹음기술로는 현장의 음을 완벽하게 담을 수 없었기 때문에 착색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스텔앤컨을 쓴 많은 분들이 소리가 심심하다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소리 성향은 첫 모델인 AK100부터 첫 거치형 오디오인 AK500N까지 일관됩니다. 우리의 컬러가 없기 때문이죠. 이것은 아스텔앤컨의 약점이자 강점이기도 합니다. 오디오 회사들은 과거의 룰에 매여있지만 저희는 발상이 자유롭습니다.” 

아이리버가 최근에 출시한 AK500N은 네트워크 스트리밍 플레이어다. 가격은 아이리버가 지금까지 출시한 제품 중 가장 비싼 1400만원이지만 박 대표는 품질과 성능을 생각하면 결코 비싸지 않다고 말했다. 

“고음질을 위해 AK500N에 적용한 기술이 무척 많습니다. AK500N에는 배터리를 내장하고 이를 통해 재생하도록 함으로써 전원 공급 중 발생하는 전기신호 노이즈를 줄일 수 있었죠. 또 CD 재생도 직접 재생하는 것보다 리핑한 후 재생하는 것이 더 소리가 좋았습니다. 그래서 리핑할 수 있도록 했는데 리핑 소프트웨어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진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닫고 리핑 소프트웨어도 별도로 제작했습니다. 저장장치도 HDD가 아닌 SSD를 채택한 것도 음질을 우선시한 결과입니다. 곧 출시할 파워 서플라이 ‘AK500P’에는 우주공학에 사용되는 소재를 사용했습니다. 이런 기술 개발비와 유통마진, 그리고 표준마진 외에는 넣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비싸다는 분은 다른 가격표를 제시해도 여전히 비싸다고 생각할 겁니다.” 

박 대표는 현재의 오디오 시장이 지나치게 고가격화됐다면서 음악에 대한 즐거움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느끼기를 바라는 마음에 불필요한 마진은 붙이지 않을 계획임을 밝혔다. 또한 가격이 비싸다고 느끼는 사람에게는 팔지 않아도 된다는 자신감도 갖게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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